자산 토큰화, 부동산 조각투자 넘어 채권·펀드까지 대격동 시대
한국, 2027년 2월 토큰증권 제도 시행 예정
부동산이나 미술품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 투자하는 방식으로 알려졌던 자산 토큰화가 기존 금융상품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한국에서도 토큰증권 제도화를 위한 법률 개정에 이어 시행령과 관련 규정 정비가 진행되면서 채권과 펀드 등 전통적인 금융상품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발행·관리하려는 움직임이 발 빠르게 일어나는 추세다.
금융위원회는 2026년 10월 토큰증권 관련 전자증권법·자본시장법 하위법규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관련 법률은 2027년 2월 4일 시행될 예정이며 초기에는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 머니마켓펀드(MMF)와 사채 등의 토큰화가 추진된다.
부동산 조각투자에서 채권·펀드로
자산 토큰화란 주식이나 채권, 펀드 수익권 등 자산에 대한 권리를 디지털 토큰 형태로 발행하거나 기록·관리하는 방식을 뜻한다.
블록체인 기반 분산원장을 이용하면 거래 내역과 권리관계를 기록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으며 법적으로 증권에 해당하는 토큰이라면 기존 자본시장 규제를 적용받는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가상자산과 구분된다.
초기 조각투자가 부동산이나 음악 저작권처럼 전통적인 증권시장에 편입하기 어려웠던 자산에 투자할 통로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채권과 펀드의 토큰화는 이미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처리 구조를 개선하는 데 의미가 있다.
금융위원회가 제시한 초기 도입 방향도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 MMF와 사채 등 기존 금융상품을 먼저 토큰화하고, 시장 인프라가 갖춰지는 과정에 맞춰 적용 범위를 넓힌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거래소를 중심으로 장내시장에서 토큰증권을 거래하는 시범 테스트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는 토큰화가 곧바로 개인투자자에게 모든 채권과 펀드의 직접 거래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초기에는 제한된 상품과 참여자를 대상으로 발행·관리·거래 시스템을 검증하는 성격이 강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상품을 토큰으로 바꾸면 무엇이 달라질까

사진=픽사베이
토큰화가 금융시장에 가져올 수 있는 변화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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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과 권리관리 절차의 통합
전통적인 금융거래에서는 증권 발행, 소유권 기록, 거래 확인, 결제와 권리관리가 여러 시스템과 기관에 걸쳐 이뤄질 수 있다.
토큰화된 시스템에서는 일부 정보를 분산원장에 기록하고 거래 조건을 프로그램으로 구현해 반복적인 확인과 대사 업무를 줄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기존 시스템과의 연계, 법적 기록의 정합성, 오류 발생 시 정정 절차까지 해결해야 실제 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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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와 자산 이전의 동시 처리
전통적인 금융시장에서는 자산의 이전과 대금 결제가 서로 다른 절차를 거치거나 일정한 시차를 두고 이뤄질 수 있다. 자산과 결제수단을 연계한 토큰화 시스템에서는 조건이 충족될 때 자산 이전과 대금 지급을 동시에 처리하는 구조를 구현할 수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토큰화된 금융자산과 결제수단을 하나의 프로그래밍 가능한 환경에서 연계하면 거래 과정의 마찰을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실제 효과는 어떤 결제수단을 사용하고 기존 금융 인프라와 어떻게 연결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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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보 활용과 자산 이동의 효율화
채권은 단순한 투자상품을 넘어 금융기관이 자금을 조달하거나 단기 유동성을 관리할 때 담보로 활용하는 자산이기도 하다. 토큰화된 채권을 담보로 제공하고 이전하는 과정이 자동화되면 담보 이동에 걸리는 시간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환매조건부채권(RP·레포)처럼 증권을 담보로 단기 자금을 조달하는 거래에서 활용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만 담보의 법적 효력과 소유권 이전, 거래 상대방의 신용위험까지 기술만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3가지 특징은 자산 토큰화의 잠재적 이점일 뿐, 모든 금융시장에서 입증된 성과는 아니므로 실제로 어느 정도 비용을 줄이고 거래 속도를 개선하는지는 상품과 시스템별로 검증해야 할 과제가 남았다.
자산 토큰화, 아직 금융시장 주류는 아냐
한국은행이 2026년 5월 발표한 ‘국내외 자산 토큰화 현황 및 향후 정책 과제’에 따르면 글로벌 토큰화 시장 규모는 2026년 3월 말 기준 503억7000만달러로 집계됐다. 2024년과 2025년에는 각각 93%, 169%의 연간 성장률을 기록했다.
빠른 성장세만 보면 토큰화가 금융시장의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시장 규모가 커지는 속도와 전통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
한국은행은 글로벌 시장이 성장하고 있음에도 전통 금융시장 전체와 비교하면 아직 작은 수준이라는 점을 꼬집었다.
또한 토큰화 시장 규모에는 자산 유형과 집계 기준에 따라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채권, 펀드, 대출채권 등 기초자산별 규모와 실제 거래량, 유통시장 깊이, 환매 조건을 구분하지 않으면 시장의 실질적인 성숙도를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성장률 하나만으로 토큰화가 기존 금융상품을 빠르게 대체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토큰화된 금융상품이 실제 투자자와 금융기관의 거래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기존 방식보다 명백한 이점을 제공해야 대중화될 것이라는 한계가 남아있다.
관건은 토큰 발행량이 아닌 실제 금융거래

사진=픽사베이
자산 토큰화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자산을 블록체인에 올렸는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기존 금융상품보다 발행·관리 비용을 줄였는지, 결제 시간을 단축했는지, 담보 활용을 효율화했는지, 투자자가 필요할 때 적정한 가격으로 거래할 수 있는지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
한국의 토큰증권 제도화는 부동산 조각투자에 국한됐던 논의를 채권과 펀드 등 전통 금융상품으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제도 시행과 시장 안착 사이에는 인프라 구축, 거래 참여자 확보, 권리 보호와 위험관리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토큰화가 금융시장의 구조를 바꾸는 기술로 자리 잡을지는 결국 블록체인을 도입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기존 금융거래의 불필요한 비용과 절차를 얼마나 실질적으로 줄였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